책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13.08.2025 00:20 — 👍 2 🔁 0 💬 0 📌 0@hellobini.bsky.social
책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13.08.2025 00:20 — 👍 2 🔁 0 💬 0 📌 0제발 나나 ㅜㅜ
12.08.2025 03:18 — 👍 1 🔁 0 💬 0 📌 0엉엉 ㅜㅜ 누구보다도 뜨거웠던 건 여름이 아니라 백금의 사랑이었어......❤️
club.changbi.com/active/1/inf...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바람이 먼저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없습니다
한눈팔지 않았는데, 없습니다
난 괜찮을 겁니다
공백은 언제고 밉지 않으니까요
공백은 언제고 색이 없느라 빛이니까요
112p 입에 담지 못한 손은 꿈에나 담아야 해요
나요
오랜 미련에 색이 남아 있다면
손바닥으로 전부 문지를 거예요
왜냐하면요
그 미련들은 현재의 나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문지르다가 손에 색이 옮겨붙으면
새끼손가락만 빼고 다 버릴 거예요
약속은
현재에서도 살아야 되니까요
꿈자리처럼 지켜야 하니까요
달아나려는 밤을 붙잡았더니
가로등이 할 일을 시작합니다
가로등이 만든 길을 흰 눈이 걸어갑니다
걸음걸이가 내게 속삭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봅니다
아껴야 하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어서
목요일은 잔뜩 풀이 죽어야 했어요
당신은 왜 일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외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제법 멀리에 서서
되도록 비좁은 자리에 서서
가능한 한 당신이 없는 길에 서서
겉보기에만 괜찮은 표정으로
남 좋은 일 시켜줍니다
102p 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
추억하는 일은 지쳐요
미련은 오늘도 내 곁에 있어요
내가 표정을 괜찮게 지으면
남에게만 좋은 일이 생겨요
복잡한 감정을 닦아내기엔
내 손짓이 부족해요
용서는 혼자서 할 수 없죠
하는 수 없이
새벽 늦게 잠이 들죠
이번 문제 때문에
단 몇 초 만에 터널이 막혔어요
괜찮은 척 애써도 어떻게든 터널은 뚫리지 않았어요
영영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적 없으니 만나야 했어요
속은 한번 상하면 돌이킬 수 없어서
왜 오래 머물면 안 되는지
06.08.2025 06:36 — 👍 1 🔁 0 💬 0 📌 096p 하고 싶은 말 지우면 이런 말들만 남겠죠
바다에 지금
물만큼이나 많은 바람이 있어요
생긴 걸 그대로 유지해도 되련만
물은 물을 더 부르네요
그렇게 뜬 무지개
무지개는 절대
바람에 밀리지 않네요
무지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저 힘을 빼버리니
무엇에도 밀리지 않는 거겠죠
나도 무지개처럼 살까요
그럴 수 있을까요, 고민하고 있는데
말이 한 마리 지나가네요
말의 발자국이 검어요 말도 고민을 하나봐요
무지개는 다시 뜰까요
알고 싶어요
핑계 맞지만 알고 싶어요
움직일 줄 모르고
사라질 줄만 아는 무지개에 대해서
깊어지니 무럭무럭 별이 피네요
밤하늘엔 별만 백 송이
나는 침착만 백 송이를 가졌네요
30p 섬은 우산도 없이 내리는 별을 맞고
일출이 평소와 달라서
저녁에 나가려 했으나
대낮에 발 벗고 나섰답니다
발 벗고 나선 해변에
이미 발 벗고 나선 사람의 발자국
발자국은 왜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을까요
발자국은 언제까지 제주에서 살 수 있을까요
짙어져가는 걸 거스르면
옅어질까요?
물 한 모금만 마실게요
두 손에 없는 건
두 눈이 가질 수 없나봐요
저물어가는 해 아래서
섬은 지워져가고
내 눈엔 얼룩이 뜨고
더이상 섬에게 미련이 없어요
짙어져가는 걸 거스르니
깊어지네요
걷다가
밭을 지키는 하얀 흔적과 같은 개에게
엄살만 담긴 지갑을 줘버린다
엄살로 한 끼 정도는 사먹을 수 있으니까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해도 내 허기는 괜찮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검은 돌들이 듬성한 골목
골목이 기우는 대로 나는 흐른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미가 해놓은 첫 줄을 검사하다가
바쁘게 빠져나가듯 집 안으로 들어간다
16p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하도리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슬슬 나가자
울기 좋은 때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밭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혼자 울기 좋은 때다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주는
바람의 목소리
고인 눈물 부지런하라고 떠미는
한 번의 발걸음
이 바람과 진동으로 나는 울 수 있다
기분과의 타협끝에 오 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좁은 보폭으로 아껴가며 걷는다
세상이 내 기분대로 흘러간다면 내일쯤
이런 거, 저런 거 모두 데리고 비를 떠밀 것이다
책 <한여름 손잡기>
06.08.2025 04:11 — 👍 1 🔁 0 💬 0 📌 0책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06.08.2025 00:28 — 👍 5 🔁 0 💬 5 📌 0첫번째 사진 바지와 두번째 사진 홀터넥을 삿더욤 같이 입을라구 히히
04.08.2025 01:32 — 👍 7 🔁 0 💬 0 📌 0너무너무 즐거우내요 ❤️
04.08.2025 01:32 — 👍 8 🔁 0 💬 0 📌 0싸구려 호루라기처럼 세상에 참견할 필요가 있을까. 노래를 해서 수치스러워질 필요가 있을까? 자꾸만 민망하다.
그런데도 왜 난 스스로 수치스러워지는 걸까. 시를 쓰는 오후다
불머리를 앓고도 다시 불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를 집어 든다.
70p Cold Case 2
(19세기 사람 쥘 베른이 쓴 <20세기 파리>라는 소설에 보면 시인이 된 주인공에게 친척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안에 시인이 나오다니 수치다.")
20세기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시는 수치가 된 걸까.
시는 수치일까. 노인들이 명함에 박는 계급 같은 걸까. 빵모자를 쓰는 걸까. 지하철에 내걸리는 걸까.
시가 나보다 다른 사람들과 더 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시 쓸 영혼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본다.
파도는 뼛속에도 결을 남겼다. 잊어버릴 재주는 없었다. 바다는 우리들의 패총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밀회를 바닷가 무덤에 두고 왔다. 뿌연 등대가 우리를 도왔고
66p 조개 무덤
여자애는 솔새만큼이나 작았지만 바다만큼 눈물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를 처음 봤던 날 방파제 보안등 아래서 우리는 솜털을 어루만지며 울었다
그날 여자애의 동공 속에서 두려운 세월을 보았고, 얼마 안 가 그 세월이 파도에 쓸려가는 걸 봤다
살고 싶을 때 바다에 갔고, 죽고 싶을 때도 바다에 갔다. 사라질세라 바다를 가방에 담아 왔지만 돌아와 가방을 열면 언제나 바다는 없었다.
상처를 훑고 간 짠 바닷물이 절벽에 밀회를 그려 넣었고 몇 해가 흘렀다. 그 옆엔 은밀한 새들이 둥지를 틀었고
힘들게 찾아온 사랑이라고 힘들게 가라는 법은 없다. 아무리 어렵게 온 사랑도 그래프 위에선 명료하다. 정점에 선 순간 소실점까지 내리꽂는 자멸.
좌표평면에선 언젠가는 모두가 떠나고 새 판이 그려진다. 소중한 것을 너무나 빨리 내려놓는 재주. 이곳의 미덕이다. 계절풍이 불었다.
26p 좌표평면의 사랑
(좌표평면 같은 아일랜드의 보도블록 위를 노면전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백 년쯤 된 마찰음이 빈속을 긁고 자본주의는 싸구려 박하사탕을 빨고 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숫자를 믿어왔다.
사랑은 노래가 아니라 그래프다. 환각의 정도를 나타내는 그래프. 두 명의 상댓값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보여주는 그래프. 머릿속에는 수식이 흐르지만 그래프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좌표평면 위의 사랑.
기다림의 자세에서 극을 본다.
근육과 눈빛과 하얀 입김.
백야의 시간은
자세들로 채워진다.
23p 자세
위대한 건 기다림이다. 북극곰은 늙은 바다코끼리가 뭍에 올라와 숨을 거둘 때까지 사흘 밤낮을 기다린다. 파도가 오고 파도가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고. 그는 한생이 끊어져가는 지루한 의식을 지켜보며 시간을 잊는다.
그는 기대가 어긋나도 흥분하지 않는다. 늙은 바다코끼리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먼바다로 나아갈 때. 그는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시 살아난 바다코끼리도, 사흘 밤낮을 기다린 그도, 배를 곯고 있는 새끼들도, 모든 걸 지켜본 일각고래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 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30.07.2025 06:59 — 👍 1 🔁 0 💬 1 📌 012p 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시인의 말
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2016년 겨울
허 연
책 <오십 미터>
30.07.2025 06:55 — 👍 2 🔁 1 💬 6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