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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s by 혦 (@hirmeyrabbit.bsky.social)

그리고 이것은 확실히 너무나 짤막합니다. 상황의 전모는 전적으로 욕지기 납니다. 나는 더 이상 유대인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55 블루멘펠트는 순수한 종교 감정이 현대 정치와 얼마나 관계가 없는가를 평가한 아렌트에 우울하게 동의하였다. 블루멘펠트는 "내가 보기에 우리는 세계정세에 대한 비교 가능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네"라는 내용의 편지를 예루살렘에서 보냈다. "십계의 의미는 유럽이든 이스라엘이든 모든 곳에서 완전히 망각되었네.'
“ p570 이스라엘은 건국때부터 충실히 아랍인을 죽이고 있었나보다. 지금까지 계속.

02.03.2026 10:57 — 👍 0    🔁 0    💬 0    📌 0

주커만은 아렌트가 특별히 키비아 사건에 대해 기고하기를 원했다. 아렌트의 생각에 반소감정과 반아랍 공격은 벤구리온 정부가 독재의 방향으로 한 단계 나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유대인 소식지』에 그 상황을 논평하는 글의 기고를 거부하고, 11월 1일 주커만에게 낙담스러운 단신을 보내기만 했다. "제시할 가장 짤막한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해하지 마시오. 아랍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살해하지 마시오.

02.03.2026 10:57 — 👍 0    🔁 0    💬 1    📌 0

“이스라엘 정부가 원리상으로 미국의 맥커런-월터법과 너무나 유사한 국적법을 1952년 3월 통과시키자, 이에 대한 아랍인의 분노는 고조되었다.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약 10%의 아랍인들은 이 법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권을 상실했다. 이스라엘 국방부가 선동한 몇 차례의 공격, 아랍 정착촌에 대한 '보복 공격'이 있었다. 보복 공격 가운데 키비아에서 발생한 보복 공격으로 52명의 아랍인이 사망했으며, 국제연합은 제재 결의안을 상정했다.

02.03.2026 10:57 — 👍 0    🔁 0    💬 1    📌 0

한국전쟁도 아렌트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연결한 “전체주의의 기원” 마지막 작업 중 마지막 작업,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전체주의와 연결되는가“에 대한 것을 촉구했던 모양이다. 미국인에게야 납작한 반공으로 해석됐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 거대 저작은 무려 3부작으로 세 번에 나누어서 출판되었다. 반응은 열렬했다.

02.03.2026 10:19 — 👍 0    🔁 0    💬 1    📌 0

현대인으로서 또 이해하기 힘든 건 나치당에 가입했던 옛 연인 겸 철학계의 거장 하이데거를 1949년에 - 근 20년만에 만나서 스무스하게 용서해버리는 부분이다. 심지어 이 🔟🐦는 옛날에 아렌트가 학교다닐 때 뮤즈 겸 연인이었다는 말을 지 부인한테 해! 그래서 둘이 만날 때 굳이 어색한 순간을 만들어! 하여튼간 근현대에 와서도 철학자들의… 연애란 이해하기 정말 힘들다. 약간 사랑에 대한 윤리가 일반인과 다른 것 같다.ㅋㅋㅋ

02.03.2026 10:10 — 👍 0    🔁 0    💬 1    📌 0

또 “바이마르 시대의 베를린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 또 얼마나 옛날 사람인 건가… 심지어 아내가 큰일하는 동안 내조하는 게 역할이었던 남편놈이 잠깐 바람까지 피운다. 아렌트는 옛날 사람이라 “바람을 피웠다” “신의를 배신했다” 자체보다 “바람 피운 게 주변에 많이 알려졌다”에 고통을 받은 것 같다. 이 문제를 적당히 다른 여성(남편 포함)과의 깊은 우정을 가지며 회피했던 것 같다.

02.03.2026 10:00 — 👍 0    🔁 0    💬 1    📌 0

도대체 몇년동안 장모랑 히키코모리로 지냈던 거람……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렌트 자신도 여성해방운동의 사회적 차원에 대해 꾸준히 반대함으로써 옛 세대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투쟁이 승리하면 뭘 얻게되는데? 잃게 되는 건 없니?” 라는 어머니적… 태도였던 것 같다. 그녀의 제일 아픈 1정체성은 유대인이었지 여성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02.03.2026 09:52 — 👍 0    🔁 0    💬 1    📌 0

왜냐면 자신이 그런 역할을 맡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마그네스의 권위는 도덕적이었으며, 아렌트의 권위는 지적이었다.” 아렌트는 정치 활동이 저술 활동을 오염시킬까봐 걱정했다. 오늘날의 정치평론가들이 가졌으면 하는 태도이긴 하다. 이렇게 유명세를 가지고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 매우 바빴고 어머니는 일도 안하고 칩거생활을 하는 사위와 살기 매우 버거워했다. 대부분의 성장한 딸이 가지는 모친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 채 이 상황을 방치했고 그 상황은 어머니가 사망하고 나서야 끝났다. 남편은 그제서야 칩거생활을 끝냈다.

02.03.2026 09:52 — 👍 0    🔁 0    💬 1    📌 0

아렌트의 다음 조치는 마그네스와 데이비드 리스먼이 국제연합과 팔레스타인의 국제연합 중재자인 베르나도테 백작에게 제출할 안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p476

그래도 나름 본인의 유명세나 인맥을 활용하긴 했던 것 같다. ‘최종 해결책(무력을 위한 소수민족의 절멸)‘은 나치의 것이지 유대인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계속 주장하지만 그럴수록 고립되었다. 심지어 유대인 테러리스트한테 국제연합 중재자는 죽어버렸다. 심지어 마그네스도 죽어버려 중심을 잃었다. 아렌트는 마그네스의 재단을 이끌 것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02.03.2026 09:52 — 👍 0    🔁 0    💬 1    📌 0

“아렌트는 트루먼 대통령의 국제연합 임시 신탁통치안이 국가의 지위를 담보하고, 분할을 방지하며, 유대인과 아랍인 테러리스트들의 득세를 저지하여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합의에서 출현할 연방 시대의 가능성을 제시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1948년 논문에서 명료하게 제시하였다. 아렌트는 가혹할 정도로 풍자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 였다. "지금은 '최종 해결책'의 시기는 분명히 아니다. 단일의 가능하고 실천적인 모든 조치는 오늘날 잠정적인 노력이며, 그 주요 목적은 화해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02.03.2026 09:52 — 👍 0    🔁 0    💬 1    📌 0

미국인들은(미국계 유대인을 포함해) 우리편 사상가를 찾았다고 생각해서 아렌트에게 유명세를 주었을 뿐인 것 같고, 입맛에 맞지 않는 얘기를 시작하자 반유대주의자라고 욕하고 버렸다. 아무도 “전체주의의 기원”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활동가가 아니었음에도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 전체주의 국가-사회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02.03.2026 09:24 — 👍 0    🔁 0    💬 1    📌 0

“아렌트는 유대인의 고향에서 자기 정치이론의 기초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들, 즉 새로운 사회 형태, 지역 정치평의회, 연방, 국제협력을 목격하고 싶었다. 전체주의 정권의 희생자인 자기 민족이 전체주의의 재출현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위한 세계적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렌트에게 기쁜 일이었다. 아렌트는 항상 자신의 최대 기대와 자기 민족이 영웅적이기를 바라는 절실한 요망이 좌절될 때마다 분노와 풍자를 드러내는 표정을 하였다. 그러나 아렌트는 포기할 각오를 하지 않았다. 마그네스의 단체는 그에게 정치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02.03.2026 09:19 — 👍 0    🔁 0    💬 1    📌 0

그러나 계속 무력 갈등은 발생했고 전투를 그만하자,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국제연합에 정전을 촉구하는 것조차 반역으로 평가됐다. 진짜 시오니스트들 광기…. 왜냐면 1915년 이스라엘 국가가 선언되자 “팔레스타인 내에서 의견의 차이는 없어지고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에 만장일치를 보였기 때문에” 아렌트는 불길하게 생각했다. “대중의 만장일치는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광신과 과잉 흥분의 표현이다.” 하긴 다들 뭔가에 씌여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미친 사람 또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게 마련이다.

02.03.2026 09:17 — 👍 0    🔁 0    💬 1    📌 0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발생한 1929년 시가전 이후 이중민족주의 제안은 무시되었다. 마그네스와 몇 사람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화해를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아랍 반란이 1936년 4월 시작되어 1939 년 여름 내내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이때 브리트 샬롬의 회원들 대부분은 체념했다.“ - p468 사실 아렌트는 아랍연방제에 그렇게까지 찬성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도부, 즉 유대인협회가 하는 짓(팔레스타인에 민족국가 창립)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 의견차이가 있어도 그와 함께 일했고 당 활동을 존중했다.

02.03.2026 09:17 — 👍 0    🔁 0    💬 1    📌 0

다수는 대체로 중유럽과 서유럽 출신의 교수와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도 아랍인들도 소수집단이 아닌 팔레스타인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 이중민족 국가를 일반적으로 제안하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시온주의자들은 이 제안 이 완전히 비현실적이고, 민족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불길하게도 이를 아랍 국가에 이르는 위장된 경로로 생각하였다. 브리트 샬롬의 이러한 제안은 결코 어떠한 단체로부터도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02.03.2026 09:17 — 👍 0    🔁 0    💬 1    📌 0

“역사가 한스 콘은 일찍이 1919년(『유대인」』에 기고한 논문에서) 아랍인들에 대한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의 국수주의적 태도를 비판하였다. 『유대인 전망/udiche Rundehauy 의 편집자 인 로버트 벨취도 비슷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아렌트가 마그네스와 함께 일하였을 때 벨취와 한스 콘은 아렌트의 동료가 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공 유하는 한 단체, 즉 브리트 샬롬(Bit Shalom이 1925년 예루살렘에서 결성되었 다. 백 명 미만의 단체 회원들은 정치적 행동주의자가 아니었다.

02.03.2026 09:17 — 👍 0    🔁 0    💬 1    📌 0

유다 마그네스는 “영국이 어떠한 민족에게도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유대인들에 대한 그들의 약속이 그 땅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로부터 적대감을 초래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영국 제국주의에 의존할 경우 결국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영국 부동산 사기를 정확히 꿰뚫고 당면한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던 멀쩡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벨푸어 선언때부터 시오니스트들은 어떤 제국주의적 광기를 가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모두가 씌이는 광기에서 제정신 유지하는 사람 귀하지…

02.03.2026 08:56 — 👍 0    🔁 0    💬 1    📌 0

즉 미국계 유대인들이 정치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들은 팔레스타인 이주민들 사이에 유럽 민족주의의 부활을 유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렌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어떠한 희망이 미국에서만 존재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일한 시각을 유지한 채 「유대인 고향을 구원하자: 아직도 시간은 있다」라는 1948년 5월에 기고한 기사에서 유대인 정치의 장에 다시 참여하였다. “ - P467 현실은 이정도 얘기조차 반유대주의 취급당했으며 아렌트는 미국계 유대인 사이에서 고립당했다. 오직 유다 마그네스만이 이런 이야기에 호응했다고.

02.03.2026 08:49 — 👍 0    🔁 0    💬 1    📌 0

“아렌트는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글을 쓸 때마다 전후 세계의 정치조직이 제국 아니면 연방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며, 연방이 형성될 경우에만 유대 민족이 오직 생존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반복적으로 제기 하였다. 그는 이웃 국가들의 호의를 소외시키면서 외국 세력인 제국에서 단지 '관심영역'이 될 유대국가의 건설을 회피하라고 자기 민족에게 촉구하였다. 아렌트는 재건》에 게재한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메노라 저널」1945년판에 최종적으로 게재한 ‘시온주의를 재고하자!’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02.03.2026 08:49 — 👍 0    🔁 0    💬 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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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림의 풀밭 : 한나 아렌트 철학 전기 : 세계사랑의 여정 · 엘리자베스 영-브륄 (지은이), 홍원표 (옮긴이) 역자의 설명문, (전기)저자의 설명문 1, 2를 읽다 보니 134페이지가 지나있었다 ㅋㅋㅋㅋ 난 그냥 혼란한 세계를 정체성 없이 떠돌며… 그래서 미치지 않고 노년까지 살아냈던 한 여성의 인생이 궁금했다. 누구에게나 정체성은 겹쳐있다. 나는 한국인 여성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경험을 많이 겪어서 아마 여성이라는 게 1순위일 것이다....

lionsgrass.kr/@hyerim/book...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비-유대인을 믿지 않게 됐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럼에도 아렌트는 야스퍼스 등 유럽인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서신을 주고받는다.

02.03.2026 08:36 — 👍 2    🔁 1    💬 1    📌 0

이번주의 국선변호 요지경

사기범 국선변호를 하고 있는데, 구치소에 접견을 갔더니 사기범이 나한테 "1/2에 동아일보에 쓴 칼럼(당신은 그녀의 아저씨가 아니다)을 봤다, 새해 첫날에는 좀 더 희망차고 긍정적인 걸 쓰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황당했다.

아니...나랏돈으로 내 변호를 받는 사기꾼이 나한테 고나리질을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02.03.2026 05:27 — 👍 81    🔁 49    💬 7    📌 1

갑자기 왜 처음샀을 땐 별로였던 젠틀리머 베개가 잠이 잘 오고 두통이 덜 오는 걸로 느껴지나 하기엔 아직 각 수면시간이 짧다

02.03.2026 07:52 — 👍 1    🔁 0    💬 0    📌 0

하지만 유럽에서 쫓겨나 굴러온돌이 없었으면 이 난리는 안났을 것임

02.03.2026 06:00 — 👍 0    🔁 1    💬 0    📌 0

신정 국가라는 이란도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21세기에 샤리아법이요? 저동네는 종교를 위해서 죽겠다는 사람도 너무 많고…

02.03.2026 05:59 — 👍 1    🔁 1    💬 1    📌 0

저는 이거 한 4층 쌓아놓고 나노블럭 넣어놨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2.03.2026 05:49 — 👍 1    🔁 0    💬 0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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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색이라 영원히 못버림… 하면서 ㅋㅋㅋ 이런데에 아까 거기에 꽂은거 막 두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

02.03.2026 05:46 — 👍 0    🔁 0    💬 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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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02.03.2026 05:38 — 👍 1    🔁 0    💬 1    📌 0

저의 나노블럭이나… 오타쿠 뺏지처럼 전시를 하는거예요 고대유물이라고 ㅋㅋㅋㅋㅋ

02.03.2026 05:35 — 👍 0    🔁 0    💬 1    📌 0

네 그쵸… 나인티나인티나인부터 코드랑 디자인 만졌죠….ㅋㅋㅋㅋ

02.03.2026 05:34 — 👍 1    🔁 0    💬 0    📌 0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같은 야훼(종종 내가 사막잡신이라고 하는)와 같은 구약 종교성지(예루살렘)을 공유하며 캐해가 다를 뿐이라서… 그런데 영국에서 시오니스트들에게 너네 종교 성지 줄께 니네 유럽에서 다나가 오케이? 했는데 그 경전은 2000년전거고 그 후로 그 지역은 그냥 아랍인의 터전인 것임. 굴러온돌이 박힌돌 빼내고 우리가 1등시민이고 거기 다 차지할테니까 원래 살던 아랍인들은 나가든지 죽든지 해(그런데 이게 유럽인들이 드레퓌스 사건 이후 내내 유대인에게 한 짓임)뭐 이래가지고… 비종교인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

02.03.2026 05:34 — 👍 2    🔁 1    💬 1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