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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뽀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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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 más acordado, más olvidado.’
휴대 전화를 꺼내 문장을 번역했다. 자동, 스페인어.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잘 잊게 된다. 

“로 마스 아스꼬르다도, 마스 올비다도.”
입안에서 울려 밖으로 꺼내진 조금 낯선 스페인어. 시목은 소리내어 읽어도 문장이 매끄럽게 이해되질 않아, 다시 검색했다. 가장 중요하거나 필요한 걸 쉽게 잊는다. 시목은 살짝 미간을 찌푸려면서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가 돌아왔다. 동재가 어떤 걸 잊었을까. 대체 어떤 걸 어떻게 잊었다는 뜻일까. 잊고 있던 목의 불편감이 다시금 확 몰려왔다.

25.09.2023 01:12 — 👍 1    🔁 0    💬 0    📌 0

‘그럼 잔뜩 인상을 찌푸린,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널 볼 수 있을 텐데.’
시목은 고약한 취향이라고 뇌까렸다. 그러면서 다시 동재가 쓴 방향대로 글자를 손끝으로 훑었다. 외우고 싶은 부분은 손가락으로 훑어가며 읽었다. 이렇게 몇 번 쓸어 확인하면 머릿속에 종이결과 글씨 매무새가 들어차면서 외워졌다. 시목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걸 즐겼지만 동재에 대해선 조금 달랐다. 자꾸만 자기가 자길 속이는 꼴이 이상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서동재니까.

‘나는 여기서 문장 하나를 배웠다.’
시목은 이마를 들어올려 주름지게 하곤 내렸다.

25.09.2023 01:11 — 👍 0    🔁 0    💬 1    📌 0

‘너와 이구아수 폭포를 함께 봤으면 좋았을 거다.’
시목은 엽서를 뒤집어 폭포를 다시 봤다. 몇 번 본 영화에선 이구아수 폭포가 등장했다. 연인이 싸구려 차를 타고 폭포를 향했지만 차 고장으로 실패하고, 나중에 한 사람만 갔던 폭포. 그전까진 고장 났던 차만큼이나 싸구려 조명으로 폭포의 느낌을 대신하던, 그 영화. 그 영화를 보면서 시목은 동재와 자기를 이입했던 적이 있었다. 동재라면 예쁘장하지만 제멋대로인 인물, 그리고 시목은 자기가 매일 방에 상대를 감금하려 드는 인물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5.09.2023 01:11 — 👍 0    🔁 0    💬 1    📌 0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모르겠네.”
시목은 그때 동재의 턱에 덜 닦인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자꾸만 괴이는 눈가도 훔쳤고, 그러다 볼에 흐르는 눈물은 입술로 훔쳤다. 서동재. 시목이 동재의 이름을 불렀을 때. 동재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순간. 시목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평생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여긴 서동재를, 아주 잠시나마 가질 기회. 그래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등을 둥그렇게 매만지며 위로했다. 동재가 시목에게 기대어 다시 잠들 때까지.

25.09.2023 01:10 — 👍 0    🔁 0    💬 1    📌 0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구분 짓지 못한다.’
동재는 새벽마다 식은땀에 절어 깼다. 그 자리에 동재는 없었는데, 꿈에선 너무나 생생하게 그 사고를 경험한다고 했다. 말 많고 옮기기 좋아하던 동재가 시목에게 매일 밤 똑같은 악몽에 시달린다는 걸 고백한 것은, 시목이 동재가 악몽에 헛소릴 지껄이다 깨는 걸 몇 번이나 보고 난 후였다. 동재는 손으로 이마의 땀을 쓸어내며 말했다. 마치 제삼자의 눈으로 보고 말하듯. 표정은 시목이 거울을 보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무덤덤하게. 자기 일이 아닌 듯. 그리고 마지막엔 같은 말을 했다.

25.09.2023 01:09 — 👍 0    🔁 0    💬 1    📌 0

그 탓일까. 그래서 이렇게 목이 죄는 걸까. 시목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정리한 빨래를 자리에 넣어두고 다시 거실에 돌아와 소파에 기댔다.

‘나는 아직 꿈을 꾼다.’
시목은 일부러 아주 천천히 한 문장씩 읽었다. 엽서란 워낙 작고, 외국에서 보내는 엽서란 더 짧은 말로 끝날 수밖에 없는 만큼. 쉽게 읽어 내리고 싶지 않았다. 자료를 읽는 게 직업이라고 해도 옳을 만큼 종일 자료를 보고 머릿속에 입력하기에,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아까웠다. 시목에게 서동재는 그랬다.

25.09.2023 01:09 — 👍 0    🔁 0    💬 1    📌 0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닌데 빤히 바라보다가 뱉었다.

“잘 지내는 것 같습니까?”
동재의 수사 결과는 시목도 알고 있다. 믿을 사람은 너 뿐이라며 시목에게 넘긴 자료에는 자살한 노부부가 있었다. 뺑소니를 치고, 매일 밤 꿈에 나오는 그들이 두렵고 막막해, 견딜 수 없다며 동반 자살한 팔순의 노부부. 용서해달라는 유서의 말이 동재에게 어떤 답이 됐을지 그건 시목이 알 수 없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며 떠난 것이 두 달 전이었다. 시목은 동재가 건넨 자료를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25.09.2023 01:08 — 👍 0    🔁 0    💬 1    📌 0

목둘레가 넉넉한 스웨트셔츠를 입었음에도 목이 죄는 듯한 느낌에, 목덜미부터 쓸어내리면서 침을 모아 삼켰다. 헛기침을 두어 번 뱉고서도 불편감 사라지지 않아 입을 이죽거렸다.

‘그렇게 잘 지내리라 믿는다.’
시목은 집안에 들어서 먼저 엽서를 거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분리수거 가방을 베란다에 내놓고선, 빠르게 손을 씻은 뒤, 다 마른빨래를 걷어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빨래를 올리고 바닥에 앉아 빨래를 개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목은 전원을 켜지 않아 화면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바라봤다.

25.09.2023 01:07 — 👍 0    🔁 0    💬 1    📌 0

평소의 동재라면 순순히 휴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버린 동재는 윗사람에게 처음으로 소리쳤다. 화를 견디지 못하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가 책상에 앉은 부장 검사의 멱살을 쥐어 올리고 바닥에 메다꽂았다. 평소의 동재라면, 아니, 동재 평생에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동재는 검사라는 동재에겐 최강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뺑소니범을 잡는 데 매진했다. 

‘너는 여전한 황시목이겠지.’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시목은 바짝 마른 입안을 혀로 훑었다.

25.09.2023 01:07 — 👍 0    🔁 0    💬 1    📌 0

블랙박스의 영상이 아무리 화질을 끌어올려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으며, CCTV마저 딱히 뭘 보여주지 못했다. 한 마디로 가해자가 나타나서 자백하지 않는 한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동재는 돌아버렸다. 어떻게든 잡겠다며 여기저기 쑤셔댔다. 지역 경찰을 닦달하고, 사고 지점을 중심으로 현수막을 걸고, 사설탐정을 고용했다. 그렇게 정신 나간 놈처럼 구는 걸 보다 못한 의정부지검에서 휴직을 권유했다. 말이 좋아서 휴직이지 불응하면 연금도 못 받는 신세로 만들겠다는 협박이었다.

25.09.2023 01:06 — 👍 0    🔁 0    💬 1    📌 0

‘이곳 날씨에 숨이 트인다.’
시목은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서 눈살을 찌푸릴 문장이 아님에도, 시목은 우선 눈살부터 찌푸리고 나서 도톰하게 올라온 엄지로 글자를 쓸었다. 그리고 한숨. 입이 아닌 코로 뱉는 깊은 한숨과 함께, 다른 우편물은 분리수거 가방에 넣어버렸다.

‘그러니까, 난 잘 지내고 있다.’
운을 다 썼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납치당했지만 살아 돌아와선 동재를 제외한 아내와 두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흔하디흔한 뺑소니였다. 더군다나 너무나 흔한 차의 스키드 마크에,

25.09.2023 01:05 — 👍 0    🔁 0    💬 1    📌 0

그리고 이번엔 바쁜 일이 겹쳐 격주보다 조금 더 밀려 우편함을 확인했다. 많진 않았다. 대부분 메일이나 문자로 받는 세상이니까. 그런 서비스가 되지 않는 몇몇 곳의, 딱히 읽지 않아도 될 우편물과 더욱 쓸모없는 인사말로 시작하는 홍보물. 시목은 한숨을 뱉으며 우편물을 훑다, 엽서를 찾았다. 전면엔 호쾌하게 물이 떨어져 안개처럼 번지는 이구아수 폭포가 인쇄된 엽서. 그리고 그 엽서의 뒷면엔 낯익은 글씨가 시목에게 말하고 있었다.

25.09.2023 01:04 — 👍 0    🔁 0    💬 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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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목동재 - Lo más acordado, más olvidado.

9월의 끝자락이었다. 낮엔 더위로 에어컨을 틀어야 하고, 밤엔 추위에 사각거리는 거위털이불을 덮어야 하는 여름과 겨울의 사이. 눈 깜짝하면 사라지는 가을.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으로 바로 올라가는 덕분에 우편함을 잘 보지 않았다. 그래서 잔뜩 쌓이는 우편물을 가끔 털어줘야 했다. 예를 들어 분리수거를 위해 부직포 가방 세 개를 들고 나섰다가 들어올 때. 어차피 집에서 쓰레기도 많이 만들 일이 없는 시목이다 보니, 격주에 한 번이면 충분했다.

25.09.2023 01:03 — 👍 6    🔁 0    💬 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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