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어서 시즌4 2화를 봤는데 진짜. 너무. 정말. 좋아서... 나는 도나가 눈물 범벅이 되어서도 2만명을 죽이는 잔인한 선택에 같이 손을 얹어서 책임을 나눠 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 하고 설득하려 하는 사람인 게 너무너무 좋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그리고
당신이 옳았어. 난 누군가가 필요해.
라고 하는 닥터..... 하......... 나는 진짜 너무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
14.01.2025 14:47 — 👍 0 🔁 0 💬 0 📌 0
시즌 4 1화! 도나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게 좋다. 설령 방법은 다소 얼렁뚱땅이라 해도... 일단 도나는 움직이는 사람이야. 그리고 테닥이 도나의 합류를 두고 헤어짐을 미리 두려워하는 것도 꽤나 마음에 든 장면. 그래... 이사람아 당신도 이제 세상이 당신의 선택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 때가 되었지... 아무리 시절인연이라 하지만 결국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그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친다.
14.01.2025 14:46 — 👍 0 🔁 0 💬 1 📌 0
그럼에도 다들 각자 나름의 약자성과 나름의 기득권을 공유하는 존재라는 걸 이해해야 함 스스로가 가장 온전한 약자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고통에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다
23.11.2024 03:21 — 👍 157 🔁 218 💬 0 📌 0
너무 가슴을 후벼파는 글이라 옮겨 써봄
23.11.2024 11:22 — 👍 66 🔁 62 💬 0 📌 1
예전에 구트위터에서 성향에 따라 클러스터가 얼마나 나뉘어있고 그것 때문에 서로 다른 성향끼리 교류가 없어서 문제가 커질 공산이 크다는 우려를 봤는데 이것도 그거랑 같은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용... 하지만 구트위터에서 서로 다른 클러스터가 섞였을 때 결과가 좋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다지. 게다가 블스 하나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닌 걸요. 무제한적인 연결을 인간이 감당할 수도 없다고 보고요.
23.11.2024 02:29 — 👍 7 🔁 8 💬 1 📌 1
무엇보다 전 블스를 덕질 용도로 하는 거라 다른 클러스터와 섞이는 걸 원하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말이 나와서 얘긴데 블스가 트위터보다 덕질용으로 적합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구트위터에서는 덕질 계정에서 사담이나 다른 얘기하면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마라!'라고 요구하는 헛소리를 들었지만 블스에선 그런 소리가 나올 이유조차 없다는 점이요. 피드를 구독하면 되니까요. 개인의 계정은 본인 마음대로 쓰면 된다는 뜻입니다. 헛소리하는 사람에게 반박할 것도 있고요. 그래서 블스는 장르별로 계정 여러개 쓸 필요도 없는 것 같고...
23.11.2024 02:34 — 👍 11 🔁 16 💬 0 📌 2
자신이 선택할 일 없는 삶의 루트를 선택해서 꾸역꾸역 살고 견뎌온 사람을 두고, "나는 저런 삶 절대 살지 말아야지"하면서 딴에 교훈 얻은 것을 자랑스럽게 전시해놓고 그게 꼴에 <페미니즘>이라고 자위하는 것 진짜 못 봐주겠다. 그래놓고 그런 여성을 미워하는 것도 꼴에 페미니즘이라 하신다. 기혼여성 혐오가 아니고, 그냥 자기들 기준에서 덜 되어먹은 여자들이 싫은 거 아닌가? 가면 갈수록 트위터 가기 싫어져... 펨셀 너무 많아.
24.11.2024 00:07 — 👍 0 🔁 0 💬 0 📌 0
카닥의 "나도 죽을만큼 노력하면 어떤 날은 닥터가 되기도 해."를 보기 위해서라도 후터닥을 다시 보아야 하는데 언제? ... ㅠ.ㅠ
22.11.2024 21:24 — 👍 2 🔁 0 💬 0 📌 0
어떤 문제를 '잔인하다'는 이유만으로 보기 꺼리고, 심지어 노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건 그냥 문명인의 반사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어떤 잔인함은 들추어 보아야 하며, 그것이 고발이라면 모두에게 함께 보자고 해야 하고, 그것이 누군가의 일상이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고 해야 한다.
21.11.2024 12:52 — 👍 105 🔁 132 💬 1 📌 1
생성형 AI의 환각(hallucination)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AI도 거짓말 엄청 잘 합니다. 현재 생성형 AI는 전혀 정직하지 않고,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람이 보고 싶어하는 걸 보여주는데 특화되어 있어요. 아마 사람 직원들보다 데이터와 문맥 마사지를 잘하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을 걸요.
단 하나의 문제라면 속으로는 “내가 원하는 데이터만 보고 싶어”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나는 정직한 데이터를 보고 싶어”라고 하는 사람의 내심을 읽는 능력인데, 이쪽 문제는 해결을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하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20.11.2024 07:08 — 👍 41 🔁 78 💬 0 📌 1
그러니까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지금 하지 못하는 일은 언젠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놓지만 않으면 된다. 뭐 그런, 아득한 기약들이 쌓인다. 뭐 어쨌든, 타인의 정답이 나의 정답은 아니니까. 물론 이 문장을 쓰면서도 사회의 정답에서 개인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등등의 반론이 있으나. 이쯤 접어두려 한다.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니까.
17.11.2024 03:55 — 👍 0 🔁 0 💬 0 📌 0
그냥 사는 것. 살아지든 살아가든. 우리 모두가 죽고 우주가 쇠하여 종래에 파멸한대도, 어디선가 시간은 흐를 테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타래를 마무리한다. '그냥,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 행위의 연속, 그리고 그로 인한 관측됨이 곧 삶이고, 존재함이다. 삶이 버거우면 잠깐 죽으면 된다. 그 순간에도 물론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히 흐르지만, 내가 잠깐 의식을 끄고 온 몸의 장기와 뇌에게 자동 주행을 맡긴다 쳐도 뭐 어쩌겠는가.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을.
17.11.2024 03:55 — 👍 0 🔁 0 💬 1 📌 0
사실 정신과는 필자의 말대로 굉장히 모호한 영역이다. 언어는 사고를 피상적으로 반영하며, 사람은 사람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내면화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는 사람을 보면 사람은 고통받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신적인 이슈는 피부라는 외피 아래 있어 그를 잘 모른다. 딱히 생이 축복이나 저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태어났기에, 그저 사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끔찍해하고, 누군가는 안도하지만, 그렇다고 생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17.11.2024 03:54 — 👍 0 🔁 0 💬 1 📌 0
필자의 한 마디 인용하기.
/증상이 아니라 고통이 치료의 기준이다.
/제정신이 아닌데 자제심이 어마어마해서 버티고 있는 것.
뒷 내용은 빠르게 넘겼다. 필자 본인도 이러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있음을 제시하고, 치료나 접근 방식의 새로운 접근을 촉구하기 위해 썼다고 되어 있었으니.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이야기 속 그들은 다들 가지각색으로 고통받고 나아지고 있었다.
17.11.2024 03:54 — 👍 0 🔁 0 💬 1 📌 0
'주관적이고 모호한 자신의 느낌, 인상으로 세계를 이해한다'는 서술만큼 내가 사회와 세계를 보는 방식을 잘 드러낸 것도 없을 듯하다. 의사와 복지센터 직원 분은 제법 신랄한 평에 그것을 받아들일 나를 걱정해 주었으나, 오히려 나는 개운했다. 정말로 개운했다. 그래! 난 이런 사람이구나, 했다.
17.11.2024 03:53 — 👍 0 🔁 0 💬 1 📌 0
'대부분의 문항에서 피상적 대답을 하였음. 이는 환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하여 유창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다소 미숙하며, 보편적이고 관습적인 함의와 규율에 다소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것으로 시사됨. 이로 인해서 주변 상황들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음.'
17.11.2024 03:53 — 👍 0 🔁 0 💬 1 📌 0
나는 살아서 이 나이가 못 될 줄 알았는데. 사주는 엄살이라며 나의 노년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꽤나 잘 산다고 한다. 서른을 꼭 넘기고 나서는 미우나 고우나 나를 조금씩 붙들어 주었던 그 얄궂고도 거칠고 또 다정한 손길들에 대해 생각한다. 임상심리상담가는 내 분석문에다 이렇게 써 두었다.
17.11.2024 03:53 — 👍 0 🔁 0 💬 1 📌 0
그럼에도 나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약해 빠진 내 정신과 영혼에 불씨를 피워 새하얀 불길을 고즈넉히 띄우는 생각을 한다. 혼자 정신을 불사지르며 살아남겠다 발악하는 것도 이십대 한 철이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17.11.2024 03:53 — 👍 0 🔁 0 💬 1 📌 0
그게 단순히 미성숙하다거나, 일머리 없는 미친 인간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럼. 그렇다는데. 믿고 싶으니 믿으련다. 실제로 약을 먹고 좋아지기도 했고, 부단한 노력 끝에 점차 나아지는 중이기도 하니. 병식이 쌓이고 병력이 길어질수록 타인의 기괴함에 관대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물론 그 기괴함이 불쾌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타인의 몰이해와 압박감, 이간질과 가스라이팅, 사람을 바닥부터 긁는 그 수많은 조우들은 여전히 끔찍하다. 병이나 장애라고 해서 면죄부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17.11.2024 03:53 — 👍 0 🔁 0 💬 1 📌 0
정말로, 실패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느껴버리거나, 흥미가 떨어질 경우,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집중력이 큰 폭으로 떨어져버린다. 누군가는 이런 점이 애 같다고 말할 것이다. 어쩌겠는가? 내 호르몬 체계와 뇌 구성도가 그렇다는 것을. 회사에서 혼자 야근하며 다음날 모두가 출근할 때까지 일거리를 붙들고 있어도, "하기 싫으면" 끝끝내 못해버리는 것이 나인 것을.
17.11.2024 03:53 — 👍 0 🔁 0 💬 1 📌 0
그렇게 해도 실수를 해서 또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깼다. 내가 해냈어! 남들이 하지 못하는 0.01 퍼센트 안의 도전과제를 해냈어! 얼마나 좋았는지. 필자는 통상적으로 쓰이는 ADHD 자가검진표 외에 다른 검진표를 제시한다. 정직하게 쓰건대, A항목 4문항, B항목 4문항, 총 8문항 중 8문항 모두 YES였다. 과집중을 잘 하는 ADHD인이면 CAT검사 결과가 오히려 잘 나오기도 한다는 언급은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그랬으니까.
17.11.2024 03:52 — 👍 0 🔁 0 💬 1 📌 0
스팀 라이브러리를 본다. 모두 혼자 하는 콘솔 게임이다. 바인딩 오브 아이작, 데드볼트, 핫라인 마이애미, 할로우 나이트 등등. 자극적이고 잔인하면서도 섬세한 컨트롤과 반사신경을 필요로 하는 그 게임들을, 나는 정말 무식하게도 '외워서' 깼다. 정말로. 언제나 같은 루트와 대처법으로 진행해 똑같은 파훼법을 무수히 시도하여 클리어를 하는 식이었다. 운? 운이 아니다. 어느 타이밍에 적이 언제 올 것인지를 전부 외웠다.
17.11.2024 03:52 — 👍 0 🔁 0 💬 1 📌 0
게임을 하면 안정이 됐다. 모니터 안의 작은 세계에만 집중하면 됐다. 틀려도 큰 패널티가 오지 않는 것, 나 혼자서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는 것만 했다. 단체 줄넘기 같은 인던 뺑이가 싫어서 지인들만 쫓아 파티플레이를 했다. 이미 아는 것인데 실수해서 틀려버리면 깨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17.11.2024 03:52 — 👍 0 🔁 0 💬 1 📌 0
공부는 꽤 잘하면서 학교에선 계속해서 졸고, 또 졸고. 학원에서 잠깐 바짝 집중하고. 없는 체력을 끌어모아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부모님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이는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시절에도 줄창 이어졌다. 부모님은 그것이 단순 스트레스 해소거나, 게임 중독이라 여겼으나, 나의 그것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7.11.2024 03:52 — 👍 0 🔁 0 💬 1 📌 0
잠을 자는 데에도 오래 걸리고, 깨는 데에도 오래 걸린다. 이제껏 단순히 수면을 좋아하거나 수면양이 다른 사람보다 지나치게 많은 것뿐이거나, 우울증 탓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모드 전환이 안 되어서 벌어진 일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내 삶의 무수한 문제들이 우수수 이해가 간다.
17.11.2024 03:52 — 👍 0 🔁 0 💬 1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