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항에 대해
행운과 재앙으로 해석되는 건
겪어온 실황과
굳건한 믿음이 야기한 건일 텐데
그거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또하나의 행운이 있기를!
@silvermee.bsky.social
N.O.T.H.I.N.G.
같은 사항에 대해
행운과 재앙으로 해석되는 건
겪어온 실황과
굳건한 믿음이 야기한 건일 텐데
그거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또하나의 행운이 있기를!
이미 재미없고 의미없다는 걸 빤히 알고도 스무 해 넘게 난 뭘 했던 거지..
인류 혹은 나라가 만든 집단최면에 취한 꼴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산 꼴.
하아.
정작 나를 존중하지 않은 건 나였다. 마치 습관처럼.
26.10.2025 00:22 — 👍 0 🔁 0 💬 0 📌 0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걸 죽어라 껴안고 살았을만큼 어지간히 미련했네.
부끄럽게시리.
이거 읽고나자, 물어봐야겠다고 벼르고선 잊어 버린 게 생각났어요.
조만간 물어볼게요.ㅡ.ㅡ
끊임없이 내가 옳다, 우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인가.
언제부터, 대체 왜.
그렇게 사는 생명체가 또 있나.
무얼까, 나는?
누굴까가 아니라 무얼까 묻게 되는.
뻔뻔하고 독하고 잔인하고 자아도취에 질긴 자만이 살아남는 인간의 세계를 들여다 보다가, 그러니까 현생인류는 목숨 있는 존재-동물·식물에 하나 새로 첨가된 種-'괴물'인 셈이라 깨닫는다. 좋건 싫건 내 정체성이구먼. 혼자 벗어 버릴 길은 없다.
11.08.2025 01:48 — 👍 0 🔁 0 💬 0 📌 0의도치 않게,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돼서 42시간만에 자게 됐다.
그거 하루 제대로 못 잤다고 혓바늘까지 돋고, 눈도 따갑고, 더위에까지 지쳐 머리도 띵하고..
그랬는데, 까무룩 잠에 빠지는 와중에 이제 자게 됐다고 신나 했던 걸 기억하는데,,,제기럴.
눈 뜨고 시계를 보니 겨우 네 시간 반 지났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1,2분 간격으로 문자가 온다.
생전 물 고이는 적 없던 데가 개천처럼 변하니 다급한 기분인가.
20몇 년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는데(여기 말고 옆도시).
우리 市 말고 이웃한 세 市에서도 비슷한 문자를 뿌리고 있다.
공동운명체?
딴 덴 우선 강이나 개천 넘칠까 봐 난리고, 우리 지역은 산사태 우려가 더 크다.
고라니, 길냥이, 떠돌이개 등등 어떨까.
낮에 보니 새들도 우왕좌왕 하던데 이 밤 무사할까.
내가 재미지게 쓰며 놀고, 내가 그걸로 큰 이익을 본다고 신나면, 똑같은 것으로 반사이익 보는 자도 늘어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덜 편리하고 덜 발전한다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욕심 좀 그만들 내면 좋겠다.
econmingle.com/economy/incr...
흐림
뜻이 흔들려도 세상은 고집스럽고
기분이 휘청인다고 시야가 눕는 건 아니더라
좀 더 자기를 존중치 않은 게 아뿔사
좀 더 독설에 길들일걸 젠장
오래 꾹꾹 누르고
보여도 못본 척 꼽아봤자다
헤헤 웃는 데 져주는 걸 세포마다 새겼으니
흐늘거리는 내 탓이거니
오답이든 정답이든 애틋할 것까지야
일기에 흐림이라 쓸까 비옴이라 쓸까
하늘로 젖힌 얼굴에 고작 한 방울 툭
비록 최악조차도 한 단계 기다리면
어느 새 익숙해지는
마음이라는 물건
"어린이를 죽이지 말라, 고 말했다가 살인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체포될 수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서구 사회에 닥친 현재.
나는 나를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얼떨떨하다.
기업들 성향이 내 보기에 좀 찝찝하다 싶으면 외면했다.
헌데 국가라는 게 그들을 얼마나 이용하고 털어먹는지, 그리고 그걸 국민들이 후련해 하는 걸 알고나자 모든 기업을 연민하게 됐다.
어쩌다 여기에 나서 여기서 일을 하는지...안됐다.
가능하면 탈출하라.
그냥...지겹다.
착각정의 매의 눈들이.
한 동무가 메세지를 보내왔다.
"아무래도 네가 불러야 다 모일 것같다. 추위 넘기면 볼 수 없을까.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저승의 약속장소도 정할겸 소집령 내려주라."
어릴 때 늘 대장만 하던 나더러 늙어서도 대장 하란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시간으로 "합쳐모여!"를 하게 되는 재미있는 현상.
3월은 1주일 단위로 병원들을 순회해야 하는지라 4월까지 기다리라 했다. '병원' 얘기는 쏙 빼고 바쁘니 4월로 하자 했다. 대장 말 들어야지 뭐.
내가 바톤을 넘겼던, 나이 먹고도 여전히 현역에서 바쁘던 동무가 지난 여름에 뇌출혈로 쓰러져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본인이 의사라 딴 동무의 초기 뇌경색은 잘 잡아 치료하더니 정작 자기는 작은아들 병원에 누워서 면회금지 7개월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26.02.2025 17:25 — 👍 0 🔁 0 💬 1 📌 0그리고...부모님들 배웅은, 이제 두 분 남은 지금까지, 우리 동무들이나 그 배우자들 배웅까지 해야 했으니... 이제는 우리 순서가 되어간다는 실감. 그 전에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
26.02.2025 17:21 — 👍 0 🔁 0 💬 1 📌 0그 뒤로 합류한 애들이 대여섯 늘었고, 완전한 귀국을 하지 않을 애들이 휴가로 일시 귀국을 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1,2년 후배들도 가끔 삐죽 얼굴을 디밀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쯤 만나다가, 포천에서 강남 모임장소들 찾아내기도 힘들어서(대개들 강남 이하로 터를 잡았으니) 다른 동무에게 바톤을 넘겼다. 그러자 전체 모임이 점점 뜸해지면서 친한 애들끼리끼리 만나고들 있었다.
26.02.2025 17:13 — 👍 0 🔁 0 💬 1 📌 0비로소 안 건데, 애들이 주로 가 있던 미국에서 슬슬 퇴직할 나이가 되어 자녀들만 떨궈놓고 귀국할 시기였던 거다. 장수하는 노인이 늘어가던 때라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모시려고 했던 거다.
학교 앞의 중국집에서 처음 만나던 날, 졸업앨범들을 안고 동무들이 속속 모였다. 거의 서른 명 넘게. 그리고 앨범은 굳이 소용이 없었다. 서로를 알아보는 데 불과 몇 초만 걸렸을 뿐이다. 아직 귀국하지 않은 동무들 소식도 들었다.
우리가 만나면 우리는 그 시간으로 가 앉는다.
내가 동무들을 모았다. 거의 40년만에. 국민학교 졸업 후에도 같은 상급학교로 진학을 했거나 한동네에 살았던 애들은 6-10년 더 만났겠지만, 그냥 소식만 들었던 게 대부분이었다. 컴이나 폰은 말할 것도 없고 집전화도 많지 않던 때니까. 그 뒤 대학 들어갔다가 또는 졸업하고 유학을 간 애들이 많아서, 거의 소식 끊긴 채로 살다가 때마침 생긴 아이러브스쿨로 애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 둘...속속 연락이 된 동무들.
모두가 의당 설레는 상황 앞에서, 사실은 내가 그래보고 싶어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안 설레는 짜증을 맞닥뜨린다.
26.02.2025 01:26 — 👍 0 🔁 0 💬 0 📌 0그래서 어머님께서 아드님을 납득하셨어요?😜
나는 요즘 물결이한테 미루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내가 안 해도 되는 게 편해서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생각하죠. 이게 재미가 아니라 진지한 부탁이 되는 날이면 나는 떠날 각오를 해야겠구나, 라고요. '더불어' 의향이 없는 세상 앞에 서서 "우리는 젊어 봤잖어"라며 이해의 의무를 지고 살 또다른 '의무'라니...참.
그냥 내멋에 겨워 살자니 것도 해본 가락이 있어야 하지. 쩝.
23.02.2025 01:57 — 👍 0 🔁 0 💬 0 📌 0이 나이 먹고 삶과 사람에 대해 새삼 '생각'이라는 걸 할 줄은 몰랐네.
23.02.2025 01:56 — 👍 0 🔁 0 💬 0 📌 0함박눈 내리다 잠깐 햇빛이 구름 찢어진 사이로 내밀다 다시 눈 펑펑.
하늘 보기에도 세상꼴 혼란스러운 모양.
거기에 저도 보태자고 실실 장난거는가.
강화도에 신진작가 릴레이 전시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내일 끝나는데.
저건 다소 커서, 일본찻잔으로 딱!
13.01.2025 01:15 — 👍 1 🔁 0 💬 0 📌 0어제 집에서 제일 가까운, 며칠 전에 오픈한 빵집에 갔더니, 빙판 주차장 발 디딜 틈 없이 빼곡빼곡.
근데 우린 먹을 게 없다.
멀쩡한 빵에다 장난친 것만 있어서, 과연 빵맛이 날까 싶었지만, 기왕 갔으니 그냥 간식으로 몇 개 집어들었는데, 휴 비싸다.
하긴 밀가루 속에 그렇게 온갖 것을 넣었으니 비싸게도 됐다.
혀 굴리는 긴 이름들, 그것들이 과연 맞는, 아니 진짜 있기나 한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촌스러워 그런지는 몰라도 빵은 빵으로, 과자는 과자로, 디저트는 디저트로...제대로 구분되었으면.
커피샵인지 빵집인지가 자꾸 생긴다.
상속세 때문에 생긴다는 그 대형빵집.
(베이커리라 안 하면 뭐라는 사람도 있더라만)
6키로 안에 세 개가 됐다.
그 가운데에 그보다 작은 커피샵들이 자꾸 옆으로 위로 증축하면서 더하기 빵집이 된 것도 또한 느니까, 빵 만드는 커피샵이 몇 개인지도 모르겠다.
열 몇 개쯤 되려나.
이제 코리안은 빵만 먹고 살려나 보다.